주제 박완서의 연작 소설 「엄마의 말뚝1, 2, 3」에는 모성의 집요함이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시공간과 결합되어 있다. 또한 오빠라는 존재를 사이에 둔 모녀간의 오랜 갈등이 작가의 냉정한 시선을 통해 드러난다. 박완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상당수가 남북 분단의 아픈 체험을 자신들의 개인적인 사실로 간직하고 있거나, 6·25전쟁의 비극적인 상황을 겪어오면서 남다른 상처를 안게 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박완서의 소설은 분단 의식에 대한 이념적 규정이나 그 해석에 매달리지 않는다. 분단이나 전쟁 자체를 문제삼고 있기보다는, 그러한 상황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말뚝」 연작을 연구해 보는 것은, 박완서 특유의 신랄하면서도 단호한 문체와, 그의 소설세계의 근원인 ‘엄마’의 삶이 어떤 식으로 자리잡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전체줄거리
「엄마의 말뚝1」 (1980) 「엄마의 말뚝」 연작은 모두 세 편으로 되어 있다. 연작의 첫편 「엄마의 말뚝1」(1980)은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이 고향을 떠나, 어린 오누이와 함께 대처 서울에서 억척과 의지로 집 한 채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골 선비 집안의 맏며느리인 엄마는, 민간요법과 무당굿을 하느라 때를 놓쳐 남편을 읽고 아들을 출세시키고, 어린 딸(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을 ‘공부를 많이 해서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인 신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로의 입성을 시도한다. 서울로의 입성이라야 겨우 현저동 꼭대기 상자곽 같은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정도였지만 엄마는 박적골의 후광에 기대어 자존심을 지키며, 기생들의 옷 바느질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오빠는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나는 군것질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머니는 시골집의 작은 도움도 받고 금융조합의 융자도 받아서 집을 장만하게 된다. 세들어 살던 집에서도 오르막길로 더 올라가 동네가 인왕산 마루턱을 치받으면서 끝나는 데 있는 여섯 칸짜리 작은 집이었다. 마당이 네모나지 않고 삼각형이었는데, 어머니는 이런 마당을 '우리 괴불마당집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해방이 되고, 오빠가 돈을 모아 드디어 "(사대)문 안의 평지"에 집을 장만하게 된다. 제대로의 서울 입성인 셈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엄마는 산기슭의 그 괴불마당집을 잊지 못하였다. 사람에게 가장 깊게 남아 있는 근거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에 밟은 땅에 있다. 어머니의 근거는 박적골이 아니라 현저동 괴불마당이었다. 최근 나는 그 현저동을 다시 들르게 된다. 괴불마당에는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엄마의 말뚝은 뽑히고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버린 그곳에서, 나는 엄마의 말뚝이 허영과 위선의 기념비인 동시에 불모의 땅에 나의 묘목을 심어준 끈질긴 생명의 기념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엄마의 말뚝2」(1982) 작가에게 '이상문학상'을 안겨준「엄마의 말뚝 2」(1982)는 이 연작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전쟁과 오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해방 뒤 한때 좌익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오빠는 삼팔선을 넘어 물밀듯이 남진해온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이웃의 고발로 끌려가서는 의용군으로 입대한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과 9·28 수복에 이어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1·4 후퇴가 시작될 즈음 오빠는 육신과 정신이 다같이 망가진 상태로 돌아온다. 시민증이 없는 오빠 때문에 피난 대열에 합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민군의 재입성을 앉아서 기다릴 수만도 없던 일가는 예전에 살던 현저동 산꼭대기의 한 집을 피난처로 정해 틀어 박혔으나, 오빠는 결국 인민군에게 발각되어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이 소설은 애써 덮어두고 있던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수술 과정의 부작용으로 어머니의 머리 속에서 그대로 되살아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든여섯 살의 노령으로 낙상 사고를 입은 어머니는 부러진 다리의 노후한 뼈를 접합시키는 대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태였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마취의 영향 탓인지 어머니는 한밤중에 헛것을 본다. 병상에 누워서 빨래를 개는 시늉을 하더니 "그놈이 또 온다, 안된다 이노옴" 하고 호통을 치고 "군관 동무, 군관 나으리,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하고 빌면서 요동을 치기도 한다. 어머니는 오빠를 숨겨야 한다며 붕대 감긴 자신의 다리를 감싸기도 한다.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에서 다친 다리를 6·25 때 죽은 당신의 아들과 동일시하는 것을 보고, 나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한에 치를 떨며 어머니를 붙잡아 누른다. 마취에서 깨어난 다음날 어머니는 나에게 물려줄 유일한 유산처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거든 느이 오래비한테 해준 것처럼 해다오." 그 끔찍했던 시절 어머니와 나는 오빠를 가매장했다가 고향 땅이 보이는 강화도 바닷가에서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하여 한줌 재로 날렸던 것이다
「엄마의 말뚝3」(1991) 연작의 마지막 편인 「엄마의 말뚝3」은 이 마취 사건 뒤로도 칠 년을 더 살다 간 어머니가 당신의 소망과는 달리 손자의 주도로 서울 근교의 공원묘지에 묻히기까지의 이야기다. 장지 문제에 대해 할머니의 손자인 조카는 아주 단호했다. “할머니도 아버지처럼 화장해서 그 뼛가루를 고향이 바라다 뵈는 바다에다 뿌리라구요? 고모 제발 다시 그런 유난 떨 생각 말아요. 내가 싫은 건 할머니나 고모의 그런 유난스런 한풀이를 지금 이 시점에서 되풀이하는 거란 말예요.” 삼우제 날 다시 찾은 산소에서 나는 어머니의 성함이 한 개의 말뚝이 되어 꽂혀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는 말뚝에 적힌 한자로 된 어머니의 성함에 빨려들 듯이 이끌렸는데, 어머니의 함자 몸 기(己)자와 잘 숙(宿)자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딸아, 괜찮다 괜찮아. 그까짓 몸 아무 데 누우면 어떠냐. 너희들이 마련해준 데가 곧 내 잠자리인 것을.’